Former Residence of Harada

마쓰사카 주변에는 “토노마치”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습니다. 1863년, 마쓰사카 성을 지키는 방닌이 “고죠반야시키”라고 불리는 가옥에 살기 시작했고 그 사무라이를 섬기는 “도우신”이 고죠반야시키 주변에 살게 되면서 그 지역을 “도우신쵸”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마쓰사카에는 사무라이가 많지 않았기에 마을은 “슈쿠바쵸(숙박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와 상인들의 마을로서 번영했습니다. 17 세기 이후, 마쓰사카 상인들은 에도와 교토, 오사카에 지점을 만들었고 그들의 재산이 마쓰사카를 상인의 도시로 발전 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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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er Residence of Harada illust
harada jiro

사업가로 알려진 하라다지로우는 사무라이를 섬기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교토와 도쿄에서 공부를 했고, 27 살 때 오쿠라쇼우(옛날 일본의 중앙 행정기관)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그는 31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국립 은행장이 되었습니다. 54 살 때는 코우노이케 은행 재건을 부탁 받았고 71 살이 될 무렵 그것을 성공 시켰습니다.
1920 년에 하라다는 전재산(1020 만 엔, 현재의 150 억 엔 상당)을 가지고 “하라다 적선 모임”을 성립하였고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 사회 사업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심 이후, 빈부의 차이가 심해졌고 국민들이 가지는 사회적 불안감은 커져가 있었습니다. 하라다는 그것에 마음을 아파하였고 자신의 재산을 자기 자신에게 쓰지 않고 나라의 복지를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930 년, 82 살이 된 그가 돌아가기 전까지 10 년 동안 적선 모임 대표를 임했습니다. 마쓰사카 시에서는 학교 급식과 병원 건설, 나무 심기 활동, 대학생 장학금 등 그 지원은 계속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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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bi-i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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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다 택은 19 세기 중반에 지어진 작은 부케야시키(사무라이가 살던 집)입니다. 1882년, 하라다는 2 층에 서재 방을 증설했습니다. 그 서재 방에 있는 동그란 창문에서는 정원뿐만 아니라 마쓰사카 성터 돌담을 볼 수 있습니다. 하라다 택 주변에는 19 세기에 지어진 부케야시키가 아직까지 몇 군데 남아 있습니다. 그 집들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울타리는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하라다 택에서 고죠반야시키, 마쓰사카 성터까지 이어지는 부케야시키 거리에서 전통적이고 고요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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